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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한 부지에서 지난 2023년 건물 신축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 공사 부지 뒤편에는 이미 최신식 고층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아디스아바바가 날로 번화하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지만, 성장의 과실이 여러 계층에 골고루 돌아가지 못해 사회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투사들로 구성된 정부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 뿐이다.”
마자 멩기스테는 ‘사자의 시선 아래’(2010)에서 1970년대 중반 에티오피아 ‘데르그’ 군사정권 시대를 이 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국가 폭력으로 매일 수십 명씩 시민들이 죽어간 시대의 삶을 외과 의사인 하일루의 눈을 통해 보증권명장
여준다. 1974년 에티오피아는 군사 쿠데타로 2000년 이상 이어진 제정 시대를 끝냈다. 정권을 틀어쥔 멩기스투 하일레는 군대를 동원한 ‘적색 공포 작전’을 통해 반대자들을 제거한다. 하일루 역시 그 와중에 투옥돼 고문 피해자를 치료하도록 강요받는다.
고문 피해자들의 부서지고 찢어진 육체는 폭력이 지배하면서 내전이 반복되는 에티오피아의 주가변동성
역사를 은유한다. 작가는 인세 지옥으로 변한 세계에서 한 인간의 윤리적 결단에 초점을 맞춘다. 하일루는 고문당한 소녀의 육체를 치료해 고문자들에게 돌려주는 대신 안락사시킨다. 이는 심오한 인간애의 표현이자 자기 삶에 대한 부정이고,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무서운 현실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작품 배경인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약 야간선물시장
2500m의 고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암하라어로 ‘새로운 꽃’이란 뜻의 이 도시는 우뚝 솟은 고층빌딩과 늘어선 판잣집이 강렬히 대비되는 인구 약 600만 명의 대도시로, 에티오피아의 비극적 역사를 상흔처럼 끌어안고 있다.
에티오피아 왕국이 역사에 등장한 건 기원전 약 800년경이다. 전설에 따르면,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 왕의 아들인 릴게임동영상
메넬리크 1세가 건국했다. 아비시니아로 알려진 이 왕국은 1세기 악숨 왕조가 예멘 땅을 정복해 홍해를 지배하면서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에 맞설 정도로 커졌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건 4세기경이다. 고대 서사시 ‘왕의 영광’엔 메넬리크가 솔로몬을 찾아갔다가, 예루살렘에서 모세의 성궤를 훔쳐 돌아오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교회 적통이 로마에 정복당코스피지수전망
한 예루살렘에서 악숨으로 넘어왔음을 알림으로써 에티오피아 80개 부족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었다. 훗날 이곳의 거의 모든 부족이 힘을 합쳐 외세와 맞설 수 있었던 이유다.
아디스아바바는 15세기 초 ‘바라라’란 이름의 군사 요새로 건설됐다. 이슬람 침략으로 나라가 흔들리면서 황제가 피란해 온 후, 도시는 성장을 거듭해 한때 인구가 16만 명을 넘기도 했다. 당시 유럽 최대 도시인 파리 규모였다. 그러나 1530년 아달 술탄국이 쳐들어와 성궤를 모신 ‘시온의 성모 성당’을 침범했을 때, 도시는 철저히 파괴됐고, 연이어 오로모족에게 정복당해 핀피네라는 작은 온천 휴양지로 전락했다.
19세기 후반, 에티오피아는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 제국의 침략을 받기 시작했다. 1886년 메넬리크 2세는 수도를 방어에 유리한 핀피네로 옮긴 후, 아디스아바바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근대식 무기를 도입하고 암하라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등 국가 개혁에 착수했다. 이는 이탈리아와 전쟁에서 효과를 보았다. 1895년 호시탐탐하던 이탈리아가 쳐들어왔다. 에티오피아는 험한 지형을 활용해 끈질기게 항전한 끝에 1896년 아디스아바바 북쪽 아드와에서 이탈리아를 무찔렀다. 이로써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 반식민주의 저항과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1930년 제위에 오른 하일레 셀라시에는 ‘유다 부족 무적의 사자’를 칭하면서 헌법 제정, 노예제 폐지 등 개혁에 나섰다. 1935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가 에티오피아를 재침공했다. ‘그림자 왕’에서 멩기스테는 동생 대신 군대에 간 ‘히르투’란 여성을 통해 외세에 맞서는 에티오피아의 끈질긴 저항과 처절한 패배를 보여준다. 1936년 이탈리아는 독가스를 사용해 에티오피아 군대 27만 명을 전멸시키고,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해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제국의 주도로 삼았다.
1941년 영국군이 이탈리아를 몰아내고, 셀라시에가 귀환해서 아디스아바바를 해방했다. 셀라시에는 국가 근대화를 원했으나, 황제 지배체제를 포기하지 못했다. 근대 교육체제가 들어서고, 사회가 합리화할수록 모순이 불거지고 국민 불만이 쌓여갔다. 세습 귀족과 교회 권력이 교육받고 능력 있는 이들의 앞을 가로막고, 토지를 독점한 소수 귀족이 가난한 농민들을 쥐어짜듯 착취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지난 2005년 10월 아디스아바바 거리를 순찰하고 있는 모습. 에티오피아 정부는 당시 반정부 시위가 나라 전역으로 확산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AP 연합뉴스


‘무덤까지의 사랑’(1968)에서 하디스 알레마예후는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셀라시에 체제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농민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베자비흐는 고위 귀족의 딸 세블레 웡겔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봉건체제 앞에서 좌절된다.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 낮아 출세할 수 없었기에 베자비흐는 절대 세블레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아디스아바바는 베자비흐 같은 청년들이 꿈을 찾아 몰려드는 가능성의 장소이면서 그들의 욕망이 꺾이는 좌절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에델(edel·암하라어로 ‘주어진 운명’이란 뜻)에 도전하나,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 작품은 라디오드라마로 각색돼 인기를 끌면서 현대 에티오피아 문학의 대표작이 된다.
1972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비극이 찾아온다. 오일 쇼크로 물가가 치솟은 데다 가뭄으로 대기근이 일어나 무려 1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황제는 언론을 통제해 그 사실이 퍼지지 못하게 막았으나, 봉기를 막진 못했다. 1974년 쿠데타가 일어나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대혼란 속에서 황제는 사망했고, 시신은 한참 뒤 황궁 화장실 밑에서 발견됐다.
데르그 정권의 탄압은 끝내 내전을 불렀다. 탄압을 피해 도시에서 탈출한 학생들은 북부 산악지대에 모인 후, 농민과 힘을 합쳐 반군을 조직했다. 1980년대 초, 대규모 기근이 다시 덮쳐 정권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식량을 구하려 수십만 명이 고향을 떠났고, 하루 수천 명씩 사람이 죽어갔다. 아디스아바바는 이들을 받아들여 무섭게 팽창했다. 산골짜기를 따라 양철판을 얹은 집들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서며 빈민가를 이루었다.
1991년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이 승리해 아디스아바바에 진입했다. 정부군은 저절로 무너졌고, 기나긴 내전이 종말을 고했다. 과도정부를 거쳐서 1994년 ‘민주전선’의 지도자 멜레스 제나위가 총리에 올랐다. 취임 연설에서 그는 ‘하루 세 끼를 먹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에티오피아 재건에 나섰다. 멜레스는 서방과 관계를 개선하고, 원조와 투자를 받아들여 경제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8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10%를 넘는 등 에티오피아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아디스아바바는 번화한 대도시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 과실은 계층별, 종족별로 불균등하게 분배됐다. 중심가 빌딩은 높아지는데, 이상하게 실업률은 높아지고 빈민가는 넓어졌다. 제나위가 속한 소수 부족 티그라이족의 권력 독점, 강압과 폭력밖에 모르는 통치 방식은 오랫동안 차별과 소외로 고통당한 최대 부족 오로모족의 반발을 불렀다. ‘아디스아바바 누아르’(2020)에 실린 단편 ‘울화통’에서 테페리 니구시 타파는 착취에 시달리는 오로모족의 고통을 ‘흑인 식민주의’의 결과라고 비판하면서 강하게 호소한다. “40년간의 투쟁은 아무 결과 없이 끝났다. 우리는 모두 울화통을 안고 살아간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2014년 집권 여당인 민주전선이 중국식 권위주의적 개발계획을 밀어붙이면서 오로모족 토지를 몰수해 아디스아바바의 영역을 넓히려 하자,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 오로모족이 투쟁에 돌입하고, 암하라족마저 이에 동조했다. 그 진압 과정에서 350명이 사망하고, 2만5000명이 체포됐다. 2018년 오로모족 출신의 아비 아흐마드가 총리에 올라서 사태가 간신히 진정되는 듯했으나, 2020년 권력을 내준 티그라이족이 무장투쟁에 나서면서 또다시 내전이 벌어졌다. 여기에 다시 주기적 기근이 덮쳐왔다.



오늘날 아디스아바바는 기후변화 탓에 점차 심해지는 가뭄과 기근, 종족 분쟁과 내전의 악순환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일찍이 알레마예후는 울부짖었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합니까? 제발 이 고통을 끝내 주세요!” 우애와 사랑의 나무 유칼립투스는 과연 언제쯤 새로운 꽃을 피울 것인가?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데르그 체제와 적색 공포
1974년 멩기스투 하일레는 쿠데타를 일으켜 제정을 폐지하고 사회주의 군사정권을 세웠다. 그는 ‘데르그’라는 임시 군사 행정 위원회를 통해 에티오피아를 피로써 통치했다. 1976년 그는 ‘적색 공포 작전’이란 이름으로, 군대를 보내 ‘혁명 정의’를 명분 삼아 수만 명을 살해했다. 멩기스투의 하수인들은 자유를 주장하는 지식인, 예술가, 학생의 명단을 작성해 체포하고 고문했고, 그 시신을 거리에 내던졌다. 전국적으로 사망자 수가 약 50만 명에 이르렀다.